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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가자

  • zdztjmj
  • 2021년 1월 8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9일

By. FOM ( @@FOM_e_l ) X 비곡 ( @seeduja )








1. 등반대회



모처럼 산 공기를 마실까 싶어 소규모 등반대회에 참가했다. 참여자 복장 조건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내 체력에 적당한 산을 오르는 대회는 이곳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굶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하는 건데....... 산 입구

에는 어떻게 봐도 여자와 남자가 구분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여자는 치마에

구두, 남자는 복장 조건 없음. 스멀스멀 올라오는 의아함을 뒤로 한 채, 등반대회

가 시작되었다.

산의 중반쯤 올랐을까? 점점 눈앞이 흐렸다. 희뿌연 색의 무언가가 시야를 방해

하고 있었다. 습한 흙을 밟는 높은 힐이 덜그럭거렸고,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이

자꾸만 나뭇가지에 걸렸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앞도 잘 안 보이는 데다, 옷이

며 신발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뿐인가? 긴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엉키기도 하고, 긴 손톱은 나무를 짚고 꺾느라 엉망진창....... 어? 젠

장, 내 큐빅! 손톱에 붙여두었던 큐빅까지 떨어졌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2. 정상으로 가는 길



이제 슬슬 발이 아프고 지쳐가기 시작했다. 가쁜 숨을 좀 회복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주변을 둘러보니, 조금 더 위에 평상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어서 올라가서

쉬어야지 다짐하며 힘을 쥐어짜 내어 올라갔다.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쓰러지

듯 평상에 앉았다. 헉헉거리며 겨우 숲을 둘러보는데, 흐르는 땀이 들어간 건지

눈이 따갑기 시작했다. 화장품도 섞여 들어갔을 텐데, 닦아내야 할 텐데 가방에

휴지는 잡히지 않았다. 한쪽 눈을 감고 열심히 뒤적거리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머리가 짧은 사람이 휴지 여러 장을 내밀

고 있었다.

“이거 쓰세요.”

“아..., 감사합니다.”

“헉, 발 안 아프세요? 이 산, 길이 험해서 구두는 힘드셨을 텐데....”

“사실 발이 엄청 피곤해요. 치마 펄럭거리는 것도 나뭇가지에 걸려서 거슬리

고....”

“제가 옷을 챙겨온 게 있긴 한데, 갈아입으실래요?”

“아, 아뇨, 괜찮아요. 제가 등반 대회에 참가한 건데, 이 복장이 규정이었거든요?”

“네?”

그 사람은 놀란 눈으로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어깨를 으

쓱이자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짓고는 가방을 뒤적거려 옷과 신발, 그리고 세면도구

를 꺼냈다. ‘저게 왜 다 나오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잠시, 내 손에 덥석 쥐여

주고는 화장실 위치까지 알려주는 사람 덕분에 더 어리둥절해졌다.

“정상까지는 오를 거라고 다짐하고 오셨죠?”

“아, 네.......”

“그럼 어서 옷 갈아입고 오세요.”

“근데 대회가,”

“그런 대회에 당신이 있을 필요가 없어요. 차라리 그냥 저랑 같이 산 올라요. 정상

까지 얼마 안 남았기는 하는데, 그래도 그 차림으론 힘들어서 못 올라요.”

아직도 어리둥절해 하는 날 보던 그 사람은 살풋 웃고는 다시 표정을 굳히며 말

을 이었다.

“제가 하나 말씀드릴까요? 저 정상에 이미 남자들은 도착했을 거예요. 놀면서 오

더라도 구두에 치마를 입은 여자들보다 빠르게 도착하겠죠. 보나 마나 편한 복장

으로 왔을 테니까요. 당신이 저 정상까지 가고 싶다면 그 불편하고 필요 없는 요

소들을 없애면 되는 거예요.”

“.......”

“어서요. 우리 같이 정상으로 갑시다.”













3. 맑고 화창한 숲


베일은 벗어낸 숲은 경이로웠다. 안개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이 맑고 푸르른 풍

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깊이 들이마시는 숨에는 맑은 숲의 향기가 느껴졌고,

습한 흙을 밟는 발걸음에는 질척한 기분 나쁨이 아니라 촉촉해서 푹신한 느낌마

저 들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카락과 손톱은 나무에 걸리거나 깨질까 조마조

마해 하지 않아도 되었고, 바지와 운동화는 앞으로 나아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화장과 치마, 높은 구두가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의 가

치가 있는 것들이었는지. 휴게소에서 만난 그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등반대회의 코스에서 이탈했다. 어차피, 더는 내가 있을 필요가 없

는 곳이었다.

멀고도 낯선 것, 그리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정상’.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정상은 정말 내 손에 쥘 수 없는 것인가? 정상으로 가는 길에

놓인 함정에 빠져 있던 것은 아닌가? 정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조건으로 시

작했다면 정상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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