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波紋

  • zdztjmj
  • 2021년 1월 8일
  • 5분 분량

By. 길동 ( @95KgkYtKinXMyAE )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의문을 가질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아서, 혹은 불현듯 든 기시감을 일상을 지키기 위함이란 명목을 들어 애써 외면하기 위해서.




* * *




한 개구리가 있었다. 다른 개구리들도 있었고, 그들은 그 개구리의 친구들이었다. 어려서부터 한 연못에서 부대끼며 자라, 누가 친구고 누가 가족인지의 구분조차 명확하지 않은 그들을 개구리는 몹시 사랑했다.




개구리들은 결코 못에서 헤엄치는 일이 없었다.


올챙이 시절에는 많은 시간을 물속에서 보냈지만, 성체가 된 이후에는 대부분의 개구리들이 왠지 모르게 물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연잎을 각자 하나씩 타고, 언제부터 그래 왔는지도 모르게 하루 종일 드러누워 햇살을 만끽하곤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타오르는 햇살에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일광욕 같은 팔자 좋아 보이는 말로 덮어 무마하기엔 그들의 행동엔 어딘가 기이한 구석이 있었다. 그들은 뜨거운 솥 안을 방불케 하는 한여름에도 내리쬐는 땡볕 아래서 가만히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온몸의 수분이 모두 날아가 버릴 것 같으면, 연못 물에 다리 한 짝을 담갔다 빼 흔들어 몸에 물을 뿌리는 식이었다.




그들은 겨울잠을 자야 하는 겨울을 제외하곤 늘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온몸이 바짝바짝 말라가서 호흡이 힘들어지는 한이 있어도 결코 물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음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조금씩 몸을 적시는 것과 내리는 비를 굳이 피하지 않는 걸로 보아, 그들이 물 자체를 기피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결코 연못에 몸을 담그려 하지도 않았다.




한 개구리는 그것을 몹시 이상하게 여겼다. 몸을 촉촉하게 유지하기 위한 물기가 필요해 못에 살면서, 정작 물에는 다리 한쪽조차 담그려 하질 않는다. 몸을 적실 물이 필요하면 쉬운 방법을 택하면 될 것을 굳이 어려운 길을 고른다. 지척에 있는 풍요로운 자원을 그 누구도 호사롭게 누리려 들질 않는다.



그는 그것이 못내 이해하기 어려워 다른 개구리들에게 제안을 했다.




“ 얘들아. 날도 더운데 우리, 물에 들어가자. 너희들 모두 덥잖아. ”




그는 당연히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질 줄로만 알았다. 물가에 살면서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겼기 때문에.




“ 싫어. 안 들어갈래. ”




하지만 호기로웠던 제안에 돌아온 답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바싹 말라버릴 듯한 여름에 때 아닌 차가움을 맛보게 된 그는 곧장 되물었다.




“ 왜? ”



“ 위험하잖아. 물속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들어가? ”



“ 위험하긴 뭐가? 다들 들어가 본 적은 있을 거 아니야.


정 불안하면 내가 먼저 해볼 테니까,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한 번만 들어가 보자. 매번 물 끼얹는 것도 솔직히 번거롭다고. ”



“ 그게 뭐 번거롭다고 그래? 우린 아무렇지도 않은데. ”



“ 아니. 그러니깐 번거롭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



“ 아니야? ”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곧장 따지고 드는 친구들 때문에 그는 잠시 움츠러들었다. 묘하게 공격적인 태도가 그를 두렵게 했다.




“ … 그래. 내가 말을 잘못했어. 미안. ”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고 싶진 않았다. 그에게도 자존심이란 게 있으니, 가능한 만큼은 맞서서 대꾸해주고 싶었다.




“ 그러니까 내 말은, 연못 근처에 살면서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거야.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



“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만약에, 네 말만 믿고 물에 들어갔다가 우리가 위험해지면 어쩔 거야? 네가 책임질 거야? ”



“ 그러니까 내가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한 거지. ”



“ 뭐 그러던지. 그렇게까지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래도. 하지만 우린 안 들어갈 거야. ”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건만, 아무리 따지고 들어도 완고한 그들의 고집은 꺾일 줄을 몰랐다.




작고 한적한 연못에 위험할 것이 무어 있다고, 왜 그리 기를 쓰고 박박 우기는지 도통 모를 노릇이었다.



연못에 무언가 이상한 동물이라도 산다면, 진작에 연잎의 줄기를 꺾어 그것을 뒤엎어서라도 개구리들을 공격했을 터였다.



물이 더러울까 봐 피한다기엔, 그들은 줄곧 연못의 물을 몸에 뿌리곤 했으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설사 물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오염도가 다르더라도, 연못이 아주 깊은 편도 아니기에 위와 아래가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물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지 않았던가. 어릴 때는 물에서 곧잘 지내놓고 이제 와서 자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래 왔다는 듯 구는 꼴이 어이가 없었다.




또 이대로라면 언제 호흡곤란으로 질식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끝까지 우기는 꼴이 몹시 한심했다. 그 미련함이 연못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들의 아둔함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늘 자신들이 우물에 사는 개구리들보다 낫다며 자부했다. 영 틀린 말은 아니었으리라.



동그란 담장 안에 갇혀 조각난 하늘을 바라보는 처지보다야, 탁 트인 풍경을 수시로 바라볼 수 있는 편이 나았다.



그 의미와 용도가 이미 퇴색된 마른 우물에 갇혀, 언제 내릴지 모를 비를 기다리며 바싹 말라가는 것보단 나았다.




하지만.



자신들은 연못에 산단 이유만으로, 우물에 사는 개구리들을 한심하고 우둔하게 바라보는 그들은 결코 알 수 없었다.



몹시 불우한 환경에 놓인 그들이나 좋은 환경을 갖추고도 그것을 조금도 활용하지 못하는 자신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온갖 해괴한 망상에 휩싸여 스스로 바보 천치가 되길 자처하는 동시에, 자신들은 꼭 무언가를 깨친 것 마냥 굴었다.




그 개구리는 그것이 영 마뜩잖았다. 그래서 그는 그 후로 한참을 고민하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결국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자꾸만 거듭한 이유는 모두 친구들 때문이었다. 늘 기이하고 미련하게만 보였던 행동들이, 그들의 맹렬한 비난을 받은 이후론 아주 조금 괜찮게 보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처음 제안을 했던 여름부터 가을, 겨울, 봄, 그리고 다시 찾아온 여름의 절반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일 년을 가까이 고뇌하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머리 끝까지 열이 뻗칠 때, 그제야 물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풍덩-!



개구리의 몸이 수면과 부딪히며 시원스러운 마찰음을 냈다.




그가 연못에 뛰어듦과 동시에 연못에는 큰 파문이 일었다.



연못에 있던 모든 개구리들이 그가 수면에 새긴 흔적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개구리는 꾹 하고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떠보았다.



차가운 물결이 잠시간 얼굴 주위를 맴돌다 이내 온몸을 감싸며 밀려들었다. 발가락을 곧게 핀 후 찬찬히 흔들자 냉기를 머금은 여린 물결이 그 주위를 유영했다.




모두가 기피하고 자신조차 은연중에 두렵게 여기던 연못 안은. 글쎄. 모두가 생각했던 마냥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꽤 좋은 축에 속했다.




물속은 꽤나 시원하고 깨끗했으며, 그 속엔 어떤 위험할만한 것도 있지 않았다.



수심이 많이 깊진 않았지만, 적어도 개구리들이 뛰어들어 헤엄칠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몸의 구석구석까지 물이 충분히 스며들자, 왠지 호흡이 한결 원활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모든 것이 생경하고 놀라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쉽고 간단한 것을, 이리 좋은 것을 왜 여태껏 시도하지 않았는지 아쉬울 정도였다.




몹시 큰 만족감을 얻은 그는 찬찬히 연못 안쪽의 깊은 곳을 응시하다, 팔다리를 길게 뻗어 휘적거리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근처에 있던 연잎의 끄트머리를 잡아 올라타며 물밖으로 나오자, 주변에 있던 개구리들이 어안이 벙벙한 눈길로 그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그들이 보낸 시선에 그 개구리는 기꺼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무사함을 가까이서 직접 확인하자, 다들 놀랍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런 친구들에게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말이 맞았다며, 진작에 이렇게 하지 않은 게 아쉽다며 너스레를 떤 그는 이윽고 한 번 더 물에 뛰어들었다.




모두 연못에는 아무 이상이 없단 걸 확인했으니, 이번에는 방금처럼 큰 반응은 없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때, 막 물에 몸을 던진 그의 등 뒤로 맹렬히 개굴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아하게 여기며 뒤를 돌아보자, 다른 몇몇의 개구리들도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는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 개구리가 그러했듯이 처음 들어온 물속에 감탄하며, 크게 퍼덕거리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중에는 일 년 전에 그를 유난히 비난하던 개구리도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빤히 쳐다보자, 눈이 마주친 그 개구리는 머쓱한 듯이 시선을 돌렸다.



처음으로 물에 뛰어들었던 그 개구리는, 몹시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아주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연잎을 모두 뒤엎을만한 파동을 일으키진 못 했다. 하지만 그가 일으킨 파문을 계기로, 많은 개구리들이 기형적인 행동 대신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우지도, 애를 써가며 몸에 조금씩 물을 적시지도 않는다.




작은 움직임은 순식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 누군가는,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 끝에 결국 모두에게 의문을 가지고, 잘못된 관습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죽음의 방독면

By. 티제 ( @ISTJ_radical ) 3044년, 지구엔 공기중에 바이러스가 서식한다는 이 바이러스의 이름은 ‘폭스’로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고 한다. 특이점은 여성에게만 발병한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위험한 상황임에도 제대로 된...

 
 
 

By. 김철퇴 ( @cheoltoe88 ) 네가 씌어준 화관 이쁘기만 하더라 위에서 내려오는 향기가 발끝까지 감싸고 빠진 황홀에 눈꺼풀을 내리고 몸을 맡겼다 그것은 그야말로 독이 아니던가 가시 돋은 향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날 제자리에 묶어...

 
 
 

Comments


© 2023 by Train of Thoughts.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